과연 우리는 세상의 이치에도 대통령도 영원할 수 는 없습니다.
지금은 성령시대 ...
성부시대 성자시대 모두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럼 성령시대에 이름이 없을까요?
우리는 기한이 끝난 구원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그 시대에 맞는 구원자의 이름을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성삼위일체의 올바른 뜻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지금 이시대의 구원자의 이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셋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셋
셋이면서 하나, 하나이면서 셋. 다르지만 같고 같지만 다르다. 이 불가사의한 섭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핵심교리다.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을 가진 분이라고 믿는다. 그동안 많은 신학자들은 셋이면서 하나인, 혹은 하나이면서 셋인 이 불가사의한 일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한 분이면서 세 분이 될 수 있을까.
성삼위일체의 의미
성삼위일체(聖三位一體)란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이 한 몸이라는 뜻이다. 즉, 성부 여호와, 성자 예수, 성령이 각각 개체가 아니라 한 분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물(H2O)은 액체다. 그러나 영하의 온도에서는 고체인 얼음이 되고, 물을 끓이면 기체인 수증기가 된다. 물, 얼음, 수증기는 모양과 이름이 다르지만 근본은 모두 물((H2O)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라디오의 모노드라마와도 같은 것으로 성우 한 사람이 아버지, 아들, 손자 세 사람의 음성으로 극을 엮어가는 것과 같은 논리다.
하나님께서는 성부시대, 성자시대, 성령시대 세 시대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 다른 이름으로 구원사역을 펼치셨다. 하지만 근본은 한 분 하나님이시다.
여호와와 예수님은 한 분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이 땅에 오실 메시아,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9:6)
예수님을 일컬어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곧 우리 영혼의 아버지이신 여호와시기 때문이다. 즉,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한 분이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근본 하나님의 본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빌립보서 2:5~8, 로마서 9:5).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이사야 44:24)
그런데 신약성경에는 만물을 예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로새서 1:16)
만약 성부 여호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 한 분이 아니라면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가 각각 존재해야 하지만 단 하나의 세계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는 개체가 아닌 일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여호와와 성령은 한 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곧 성령이라는 사실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세히 기록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린도전서 2:10~11)
사람의 사정은 그 사람의 영 외에는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의 영, 즉 성령 외에는 하나님의 사정을 알지 못한다. 이는 성령이 하나님 자신이며, 여호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일체라는 의미다.
예수님과 성령은 한 분
…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일서 2:1)
예수님을 ‘대언자’라고 하였는데, 대언자는 헬라어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σ)’를 번역한 것이다. 난하주에는 보혜사로 해석되어 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보혜사가 성령이라고 가르쳐주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요한복음 14:26)
요한일서에서는 성자 예수님을 보혜사라고 하였고,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을 보혜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성령은 한 분이 분명하다.
성령은 인격체다
성령은 바람이나 전파처럼 거시적인 존재가 아니다. 감정을 지니고 계시고(로마서 15:30), 근심도 하시고(에베소서 4:30), 말씀도 하시고(요한계시록 2:7), 탄식도 하시며(로마서 8:26), 기도도 하시고(로마서 8:26), 가르치기도 하시고(요한복음 14:26), 훼방도 당하시는(마태복음 12:31~32), 분명한 인격체다.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19~20)
성령이 바람이나 전파 같은 무형의 힘이라면 어떻게 성령의 이름이 존재할 수 있을까. 성령에게 이름이 있다는 말씀만으로도 성령이 곧 인격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세 시대를 통해 각각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셔서 구원의 섭리를 이루어가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신 세 가지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행하고 기념하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아버지(聖父)로 섭리하셨을 때의 이름은 여호와였다. 또 아들(聖子)로서 역사하셨을 때의 이름은 예수였다. 성령시대, 성령(聖靈)으로 나타나실 때의 이름은 무엇일까.
성령시대 구원자, 새 이름
성부시대에는 여호와, 성자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었듯이 지금 성령시대에는 예수님의 새 이름으로 기도를 해야 응답받을 수 있다(시편 116:4, 요한복음 16:24). 또한, 성부시대에는 여호와, 성자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을 불러야 구원받을 수 있었듯이 지금은 반드시 새 이름을 불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요엘 2:32, 로마서 10:9~13). 그렇다면 새 이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베풀어줄 예수님의 새 이름, 성령시대 구원자 성령의 이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성경뿐이다.
지금 많은 기독교인들은 오로지 자신의 영혼의 상태는 살펴보지않고 하늘을 바라보지도 않고 이땅의 육신적 축복을 더 바란체 하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과연 얼머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은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네 꼭 갈 수 있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올때 세상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셨다.
만일 믿음없는 세상에 인자가 온다면 어느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이미 하나님은 다시 오셔서 믿음없는 세상에
훼파된 생명의 진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다.
늦기 전에 성경의 귀한 예언의 말씀을
반드시 알아봐야 할 것이다.
언제 오실까
“아빠, 언제 오세요?” 다섯 살배기 딸이 아빠를 기다린다. “엄마, 언제 오세요?” 중학생 아들이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린다. “아들아, 언제쯤 도착하냐?” 고향집에 계신 부모님이 자식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이처럼 시간과 서로 닿아 있다.
3500년 전, 이집트에서 해방만을 꿈꾸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의 메시아를 기다렸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출애굽기 3:7)
하지만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언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막연한 가운데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들에게 모세라는 선지자가 등장한 것은 430년 후의 일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재림 예수님을 기다린다. 인류의 구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재림 예수님은 과연 언제 오실까. 성경은 재림 예수님께서 등장하는 시기에 대해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마태복음 24:3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의 대화 중 하셨던 말씀이다. 이 대화의 주제는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의 징조’다. 지금 눈앞에 예수님을 두고 ‘주의 임하심’을 논한다는 것은 또 다른 예수님 즉, 재림 예수님의 오실 시기를 묻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재림 예수님께서 언제 오십니까?”라는 제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낼 때 올 것이다”라고 답하셨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낼 때’는 과연 언제란 말인가. 이 답에서 우리는 두 가지 의문이 든다. 먼저 무화과나무는 무엇이며 또 하나는,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는 시기는 언제인가 하는 것이다. 첫째로 무화과나무가 뜻하는 것은 무엇인지 성경에서 알아보자.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마가복음 11:12~14, 20~22)
이 말씀만 본다면 온유하다는 예수님의 성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란 것은 무화과가 열매 맺을 시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즉, 9월 중순이라야 사과를 수확할 수 있는데 3월에 사과나무에 가서 사과를 따려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말라버리게 하셨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냥 읽어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 또 하나 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3:6~9)
이 비유에서도 한 사람은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없다고 일하는 사람에게 베어버리라고 명령한다. 그래도 과원지기는 한 해만 더 두고 보자며 열심히 길러볼 테니 기회를 달라고 사정한다. 이 두 말씀들은 무화과나무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이다. 이제 이 말씀들에서 말하고 있는 무화과나무의 의미를 성경에서 알아보자.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이사야 5: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예레미야 24:5)
다시 말해 위에서 말씀하신 무화과나무는 바로 이스라엘 국가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으나 이스라엘은 오래토록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겼던 뿌리 깊은 종교관으로 예수님을 배척했다. 그 이유로 하나님은 ‘3년 동안 와서 실과를 구했다’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소했던 말씀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스라엘은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처럼 저주를 받게 됐다. 그 결과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무화과나무가 가지가 연해지기 전, 잎사귀를 내기 전’인 말라버린 상태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누가복음 21:20~24)
AD 68년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했다. 하지만 그해 여름 네로 황제가 죽자 로마에서는 후계자를 놓고 권력 투쟁이 벌어져 예루살렘 진압은 잠시 주춤했다. 결국 베스파시아누스는 로마로 돌아가 황제로 추대됐다. 그사이 예루살렘에 있던 초대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서둘러 예루살렘을 떠났다.
2년 후 AD 70년, 그의 아들 티투스가 유다의 군사작전권을 갖게 됐다. 잘 훈련된 로마 군단을 이끌고 들어온 티투스는 예루살렘 성 포위를 강화하고 성공적인 작전을 수행해 갔다. 결국 AD 70년 예루살렘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리라(누가복음 21:6)”는 성경 말씀처럼 이스라엘은 종말을 고하게 됐다.
이스라엘은 1900년이 넘는 세월을 유랑자의 신세로 지냈으며 국민들은 세계 각지로 흩어져 나라 없는 설움 속에 살았다. 그러나 분명 무화과나무는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야 한다. 그때 재림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예언이 있기에 무화과나무인 이스라엘의 독립이 있어야 함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1860년 부다페스트에 테오도르 헤르츨이 태어났다. 그의 등장은 이스라엘 독립의 작은 등불이었다. 1894년 드레퓌스 사건에 자극을 받은 그는 1897년에 이르러 시온주의 총회를 열게 된다. 유대인들이 고국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유대민족주의운동인 시오니즘은 전 세계 유대인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시온운동을 더욱 확고히 했고 결국 1948년 5월 14일 금요일 오후 4시, 텔아비브 박물관에서 이스라엘 국가(國歌)인 '하티크바(희망)'가 불려진 후 벤 구리온 수상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독립 헌장을 읽었다.
"우리는 유대인의 역사적이며 본질적인 권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국가를 팔레스타인에 세울 것을 선언한다."
드디어 이스라엘이 독립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태복음 24:32)”는 말씀처럼 이스라엘이 1900년의 혹독한 세월을 넘어 독립을 이루었다.
고목생화(枯木生花)의 기적은 재림 예수님께서 오시는 시기를 말하고 있다. 인류가 기다리는 재림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상징하는 이스라엘이 독립하는 그때 등장하신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를 내는 1948년 그때, 우리에게 영생의 방법인 유월절을 가지고 오신 분, 바로 안상홍님이시다. 안상홍님께서는 1918년에 탄생하셔서, 1948년 다윗왕의 예언에 따라 30세에 침례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새 언약 유월절을 가르쳐주신 재림 그리스도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재림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린다. 언제 오실까 하늘만 바라보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재림 예수님은 이미 오셔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셨다.
하나님의교회⑅안증회⑅안상홍증인회는 오랜 시간 믿어왔던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하나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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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살펴볼 말씀은 “약속의 자손에 대하여”입니다.
성경은 구원자를 증거하는 합니다[요 5:39]. 더불어서 구원자를 통해 구원받을 백성들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약속의 자녀가 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롬 9;7] 오직 약속의 자녀만이 하나님의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을 이룬 사람 즉, 약속을 받은 자녀가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럼 성경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약속의 자손은 누굴까요?? 창세기 가운데 나오는 이삭과 야곱입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약속을 받은 것이지요
정확히 말하면 어느 때든지 미리 예언으로 약속하고 그 예언이 성취되는 그 시대 사람이 약속의 자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속의 자손은 마지막에 구원받을 약속의 자녀까지 다시말해 구원받을 마지막 교회까지 하나님께서는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럼 어떤 교회가 구원받을 약속의 자녀가 모인 마지막 교회가 될까요?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이 예언해 놓았으면 그 예언이 성취되어 있는 교회가 바로 마지막 구원받을 약속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영의 아버지,어머니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안증회⑅안상홍증인회
신.구약 선지자가 예언한 마지막 선지자와 마지막 교회
1.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마지막 선지자와 마지막 교회
말 4장 5~6절 이 예언의 완전한 성취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즉, 예수 강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 엘리야를 보내서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진리를 증거하게 되는 것을 예언
2.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마지막 선지자와 마지막 교회
사 46장 11절 동방에서 한 선지자를 택할 것에 대해 기록하기를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고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예언
3. 사도 요한이 예언한 마지막 선지자와 마지막 교회
계 7장 2~3절 밧모섬에서 계시를 볼 때에 해 돋는 곳(동방)에서 마지막 인치는 천사( 이사야가 예언한 동방에서 택한 하나님의 마지막 선지자)가 올라와 택한 인맞은 자, 십사만사천에 대한 예언
약속의 자손 주목해봐야 할 점
1. 택함에 대해
하나님께서 택함의 역사를 살펴보면,
아브라함을 먼저 택하사 이삭을 낳았고
야곱을 택하사 이스라엘 12지파를 낳은 것 같이
마지막 시대에도 마지막 선지자의 사명을 받든 이가 구원받을 십사만사천을 택합니다
곧, 마지막 선지자의 사명은 약속의 자손을 모으는 것으로 산 자의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약속은 선지자를 택해 약속하셨고, 그 택한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가 택함을 입는다면 약속의 자손이 되고 구원받는 십사만사천이 될 것입니다.
하늘과 소통하며 참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하나님의교회`⑅안증회⑅안상홍증인회
2. 마지막 약속의 자손인 십사만사천에 대하여
계 14장 1절 십사만사천이 다 모이지 않았는데 다 모여있다고 예언한 것은 앞으로 이룰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사만사천도 구원받을 약속의 자손인 것입니다.
최후 마지막인 오늘날에 와서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약속의 자손이 되어야지 하나님의 기업을 받게 될 하나님의 마지막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귀중한 문제이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백성은 참으로 귀중한 백성입니다.
성경의 비밀이신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 ⑅안증회⑅안상홍증인회`
3. 구원받을 약속의 자손의 특징
계 14장 12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가 약속의 자손이고 십사만사천입니다.
택한 선지자를 통해 택함을 받았다해도 마지막 선지자의 사명에 들기 위해 힘쓰지 않는다면 구원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천국의 마11장 12절과 눅 13장 24절의 말씀처럼 힘쓰고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마지막 약속의 자손인 십사만사천에 들기 위하여 힘쓰는 하늘 가족이 됩시다~~^^
하나님의교회⑅안증회⑅안상홍증인회에서 구원의 약속을 받으시고 약속의 자손이 되시길 바랍니다~
성령시대 구원자로 오신 안상홍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 성령시대에는 성령과 신부되신 안상홍님, 어머니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다. 자녀들에게 구원주시기 위해 친히 오신 성령시대 구원자 안상홍님, 어머니하나님
그러나 성령시대 구원자이신 안상홍님, 어머니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일부는 구약시대 구원자의 이름이 예수였다고 주장을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이 왜 거짓 주장인지 살펴보자 구원자로 번역된 히브리어가 '예수'이기 때문에 이사야 19장 20절 '예수'를 보내서 구원해주시겠다는 예언이고, 이사야 43장 11절에서처럼 성부 하나님도 '예수'라고 불렸다'라고 주장을한다. 이 주장이 왜 거짓인지 살펴보자. 이사야 19 : 20 "여호와께서는 한 구원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이사야 43 : 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1. '구원자'로 번역된 히브리어가 '예수'인가? 이사야 19:20, 43:11에서 '구원자'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예수'가 아니라 '모쉬아'이다. 더구나 '예수'는 히브리어가 아니라 헬라어이다. 히브리어(극히 일부는 아람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에 어떻게 헬라어 이름이 기록될 수 있겠는가? 저들은 '모쉬아'의 어근인 '야솨'의 발음이 예수와 비슷한 사실을 이용하여 엉터리 주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 2. 성부 하나님도 '예수'로 불렸다면 사도들이 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핍박 받았는가? 이전까지 유대인들이 모르던 예수님을 구원자로 전했기 때문에 사도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심한 반대와 모진 핍박을 받았다. 구약만을 믿는 유대인들이 구원자의 이름을 '예수'라고 알고 있었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는다고 전하던 사도들을 왜 핍박하고 훼방하였겠는가? 사도행전 4: 17~18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이사야 19: 20에 대한 다른 번역본들 '모쉬아'를 모두 '구원자(savior)'로 번역했을 뿐 '예수'라는 이름으로 번역한 예가 없다. 공동번역 "그가 구원자를 보내시어" 표준새번역 "주께서 한 구원자를 보내시고" 현대어 성경 "주께서 그들에게 구원자를 보내실 것이다" 현대인의성경 "여호와께서는 한 구원자를 보내" 따라서 예수의 이름은 구약시대때 부터 있었고 안상홍님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구원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거짓주장이다.